약속은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를 이어준다. 기업의 약속은 소비자와 기업을, 근로자와 기업을, 사회와 기업을 이어주며 나아가 한 개인에게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소중한 약속으로 단단한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기업들을 소개한다.
해뜨는 식당
1,000원으로 라면 한 봉지 사기도 힘든 요즘이다. 하지만 전라남도 광주 대인시장에 위치한 ‘해뜨는 식당’의 밥값은 13년째 1,000원이다. 식당에는 2010년 처음 문을 연고故 김선자 여사의 사진이 걸려 있다. 시장에서 구제 옷을 팔며 상인들과 점심을 나눠 먹던 것이 시작이었다. 숟가락이 하나 둘 늘어가자 더 많은 이들과 한 끼를 나누자는 생각으로 식당을 열었다. “공것으로 먹으라 하면 (손님들이) 창피해서 못 먹으니까 천 원 내고 재밌게 먹으라는 그런 의도로 시작했고 ….” - KBS뉴스 인터뷰 중
하지만 8년 전, 암 투병 끝에 식당 주인은 세상을 떠났고, “식당을 계속 운영해주길 바란다.”는 어머니의 유언을 받아 딸 김윤경 씨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식당을 찾는 손님들을 보며, 음식도 할 줄 몰랐던 그는 3년만 버틸 마음으로 식당 일을 계속해 갔다. 식당 운영만으로는 매달 적자라서 틈틈이 보험사 일도 병행하면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만 식당 문을 열었다. 사정이 어려워 문 닫을 위기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누군가가 나타나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1,000원 백반’이라는 손님들과의 약속이 지켜지고 있다. 오늘도 식당에는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100여 명의 손님들이 찾아온다. 어떤 손님은 매일 같이 따뜻한 밥을 지어주는 그가 고마워 수급받는 나라미 쌀을 지고 오기도 한다. 돈이 부족해 100원, 500원 짜리를 놓고 가는 이들을 보며 그는 말한다. “할 수 있는 한 좋은 걸 해드려야죠.”
노루페인트
노루페인트는 1945년 설립된 이후 노사 분규가 없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수십 년간 다툼없이 임단협을 타결해 왔고, 노사협의회에선 분기별 손익현황 등 경영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된다. 이는 노사가 서로를 신뢰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는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였다. 당시 노루페인트는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며 거의 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존폐의 갈림길에 선 회사는 결국, 임직원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했다. 이때 창업주 한정대 회장은 직원들에게 “회사가 살아나면 모두 재고용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노조는 이 약속을 믿고 정리해고를 받아들였다. 1,080명이던 직원은 650명으로 줄었고, 남아 있는 직원들은 상여금을 반납하기도 했다.
이후, 위기를 넘기고 경영상황이 차츰 회복되었다. 한 회장은 직원들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1999년 1월, 퇴직 사원 중 90명이 먼저 재입사했고, 이후 2002년까지 200여 명이 모두 재입사했다. 해고자의 95%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직원들은 회사를 믿었고, 회사는 약속을 지켜냈다. 직원들과의 약속을 중시하는 창업주의 자세는 기업에 그대로 스며들어 노루페인트의 강점이 되었다.
네스프레소
에너지 효율성을 고려해 제품 생산하기, 무한히 재활용할 수 있는 포장재 사용하기, 수백만 그루의 나무 심기, 무너진 커피 농가 되살리기, 전 세계 커피 농부들의 안정적인 수익과 미래를 지원하기.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 네스프레소가 수십 년간 실천해온 것들이다. 커피를 파는 회사가 이렇게도 많은 일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비자에게 최상의 품질을 가진 커피를 오늘도, 내일도, 먼 미래에도 공급하겠다는 약속 때문이다.
특히, 네스프레소는 ‘좋은 커피가 계속 공급되기 위해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들의 삶이 향상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전체 생산량의 80%가 감소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푸에르토리코와 쿠바의 농가를 찾아가 수년간 지속 가능한 농법을 전수하고, 커피 종자를 제공해왔다. 또한, 이 커피를 네스프레소 한정 수량 제품으로 판매하여 현지의 고유한 커피 전통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네스프레소는 ‘커피 한 잔이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좋은 커피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계속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오늘도’ 약속한다.
복을 만드는 사람들
회사 이름은 회사의 나아갈 방향과 정체성을 담는다. 경상남도 하동에는 ‘복만사’라는 기업이 있다. ‘복을 만드는 사람들’의 줄임말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건강하고 맛있는 행복을 제품에 담아, 세상에 전하는 기업이라고 소개한다.
복만사의 조은우 대표는 20대에 서울 등지에서 외식사업을 운영하다가 성공과 실패를 겪고, 연고도 없는 하동으로 내려왔다. 당시 하동의 대표적인 먹거리를 만들어보겠다는 그의 열정과 사업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전해 들은 하동군은 그에게 흔쾌히 손을 내밀어주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대롱치즈스틱’을 개발했고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주 재료였던 치즈는 수입산이었다. 복만사가 사회적기업, 농촌융복합산업 인증을 받은 업체임에도 지역 농산물을 많이 쓰지 않고 있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마침, 코로나19로 지역 농산물이 판로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기도 했다. 고민 끝에 그는 우리 농산물을 쓰는 ‘냉동 김밥’을 개발했다. 현재는 미국, 홍콩 등 12개국에 직수출을 하는 기업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이 받았던 도움을 잊지 않고, 사회 환원에 힘쓰고 있다. 지역민 취약계층 고용비율이 60%를 넘는다. 또한 하동의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해 정기적으로 수익금 일부를 장학기금으로 기부한다. 그는 ‘복만사’가 ‘공익적인 영향력을 전하고자 한 것’ 덕분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복만사는 이윤 추구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며 ‘복’을 만들어가고 있다. 회사 이름이 곧 사회를 향한 기업의 ‘약속’이 된 것이다.
이디오피아집
강원도 춘천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카페가 있다. 소양강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이디오피아집’이다. 이름처럼 카페에서는 에티오피아 원두로 내린 커피를 판매하고, 에티오피아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물품들이 가득하다.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는 이 카페의 특징 중 하나는 연중무휴라는 점. 사장인 조수경 씨는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에도 눈물을 훔치며 가게를 열었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1968년에 방한한 에티오피아 황제와 부모님의 약속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1968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한국전에 참전해 싸운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의 희생을 기리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 춘천을 찾은 적이 있었다. 이때, 에티오피아 문화를 알리는 장소로 기념관 건립을 요청했는데, 조수경 씨의 부모님인 조용이, 김옥희 부부가 그 뜻을 받아 사비로 커피집을 개관했다. 황제는 ‘카페를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뜻을 담아서 ‘이디오피아벳(집)’이라는 이름을 선사했고, 부모님은 황제와 ‘100년 동안 하루도 커피 향이 안 나는 날이 없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후 황제는 에티오피아 황실 커피 생두를 한국 외교부를 통해 직접 보내주기도 했다. 부부는 생두를 직접 프라이팬과 방앗간에서 볶아가며 커피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로스팅 커피였다. 또한 에티오피아 전통 축제 기간에 맞춰 한국에 거주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도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를 열고 있으며, 최근에는 1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디오피아집은 반세기가 넘도록 에티오피아 원두로 커피 문화를 전파하는 중이다.
“이디오피아집은 지금까지 수많은 추억과 역사를 함께 나누고 많은 분과의 인연을 쌓아왔습니다. 오직 한자리에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좋은 커피를 제공하고 있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앞으로도 오시는 한 분 한 분 소중하게 맞이하기 위하여 커피 향기를 머금으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카페에서는 누군가의 희생을 잊지 않는 마음,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이 가득하다.
출처 : 데일리투머로우(http://www.dailytw.kr)